나연은 창고 안에서 M과 눈을 마주친 뒤에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와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녀에게 남긴 불안감은 너무나 컸다. 그의 평온한 태도와는 달리, 그의 말에서 뭔가 섬뜩한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너희를 구원하려는 것뿐이야.”
그가 창고를 떠난 뒤, 나연은 그곳에 홀로 남아 숨을 고르며 기계들을 다시 살폈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M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 데이터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도구 이상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는 그들을 돕는 척하며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위해 이런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이 공동체는 단순히 이상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복종의 기이함
나연은 다음 날 아침,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자신의 몫을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뢰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의 표정은 비슷하게 보였다.
그중 한 명, 늘 M을 칭송하던 여자가 조용히 나연에게 다가왔다.
“어젯밤 M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어요. 그가 직접 말을 건넨 거라면, 당신은 특별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나연은 그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
“그게 왜 특별하죠?”
여자는 나연을 신중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두를 믿는 건 아니에요. 그가 당신을 믿기로 했다면, 당신에게 중요한 역할이 있을 거예요.”
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속에서는 또 다른 의문이 피어났다. M은 왜 그녀에게 접근한 걸까? 단순히 이 공동체의 규칙을 따르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단서
그날 오후, 나연은 다시 창고 주변을 배회했다. 창고 안에서 발견한 기계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M이 그녀를 떠나게 놔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경고였을까, 아니면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창고 뒷편으로 돌아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다, 벽에 희미하게 새겨진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비밀문 같은 것이었다.
“…여기 뭔가 더 있군.”
나연은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그 흔적을 따라갔다. 벽은 단단했지만, 특정 부분에 손을 대자 벽이 약간 흔들렸다. 숨겨진 문이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비밀 통로와 두려운 발견
문 안쪽에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깊고 어두웠으며, 바닥은 마치 무언가를 끌고 지나간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연은 한 손에 칼을 쥔 채 천천히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통로 끝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고,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는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창고에서 봤던 기계보다 더 크고 복잡했다. 기계는 여러 개의 튜브와 선들로 연결되어 있었고, 각 튜브의 끝에는 이상한 캡슐 같은 장치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캡슐 안에는… 사람들로 보이는 실루엣이 있었다.
나연은 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캡슐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공동체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뭐야…”
그녀는 속삭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때, 기계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그녀의 움직임이 센서를 건드린 것 같았다.
“침입자 감지.”
차갑고 기계적인 음성이 울렸다.
발각된 나연
나연은 재빨리 몸을 숨기려 했지만, 문이 갑자기 닫히며 통로가 막혔다. 동시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시 칼을 쥐고 긴장한 채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M이 서 있었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닌데, 나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이번에는 그녀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건… 도대체 뭐야?” 나연이 칼을 겨누며 물었다.
M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네가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제 여기까지 온 이상, 네가 할 선택은 하나뿐이야.”
“선택?”
“이 공동체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고, 나와 함께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가 되는 거지.”
M의 계획의 일부분
M은 그녀를 기계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궁금했지?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곳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게 버려지지도 않아.”
그는 캡슐에 손을 대며 설명했다.
“이곳은 인간의 정신을 초월하는 장치야. 그들의 의식은 이제 이 기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존재해. 육체적인 한계를 벗어나, 인간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지.”
나연은 그의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네가 이걸 구원이라고 부르는 거야?”
M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그리고 곧 너도 이 선택을 하게 될 거야.”
나연의 결심
나연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구원자로 칭했지만, 그녀의 눈에 그는 그저 폭군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와 함께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녀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심시키는 척했다.
“…이해했어. 나도 알아가야겠지.”
M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네가 올바른 길을 선택할 거라고 믿어.”
하지만 나연은 이미 마음속에서 결심했다. 그녀는 이 공동체의 진짜 실체를 밝히고, M의 계획을 막아야 했다. 그가 말한 ‘구원’은 결코 그녀가 이해하는 의미의 구원이 아니었으니까.
끝없는 의문과 시작된 반격
그날 밤, 나연은 창고를 빠져나와 다시 공동체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묘한 슬픔을 느꼈다. 이들은 모두 M을 믿었고, 그의 구원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확신했다. M의 계획은 생존이 아니었다. 그것은 통제와 파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