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은 지도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그 지도가 정말로 M이 준 대로의 길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그녀를 더 황폐한 곳으로 몰아넣기 위한 함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나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익힌 직감이 그녀를 계속 걷게 만들고 있었다.
나연은 홀로 있을 때보다 더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녀가 지난 길을 따라 새겨진 M의 발자국과 그가 남긴 흔적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나연은 아직도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정말 이걸 원한 걸까?’
며칠 동안 길을 걷다가 나연은 마침내 지도의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다. 황폐하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의 끝자락에서, 그녀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천막들이 모여 있었다. 천막은 수십 개가 넘었고, 여러 개의 불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누군가가 땔감을 모아놓고, 물을 끌어들이는 간이 장치를 세우고, 심지어 누군가는 모닥불 옆에서 통조림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그러나 평화롭게 앉아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연은 믿기 어려운 광경에 순간 멍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들이 정말로 M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 순간, M이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와 나연을 반갑게 맞았다.
“드디어 왔군.”
그는 여전히 침착한 미소를 띤 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뒤편에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나누고 웃고 있었다. 나연은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말을 잃었다.
공동체의 규칙
M은 나연을 이끄며 공동체의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공동체의 규칙들을 설명했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의 생존을 돕는다. 물과 음식은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제공되며, 각자의 능력에 맞게 서로가 기여한다.”
“기여?” 나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그 말이 왠지 속임수 같았다.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기여’라는 말은 주로 약탈을 뜻했으니까.
M은 그녀의 불신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믿기 어려울 거야.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이용할 생각부터 버려야 해. 지금까지의 세상은 모든 걸 빼앗으려 했고, 그래서 무너졌어. 이제 우리가 새로 세운 이 공동체는 다르다.”
나연은 그의 말에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M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고독하고 불신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게는 어느새 익숙해진 듯한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나연은 이들이 정말로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다
며칠 동안 나연은 공동체에 머물렀다. 매일같이 긴장을 놓지 못했던 그녀는 이곳에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공동체에서는 하루 두 번씩 식사가 제공되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공동체의 식량 창고에 기부해야 했다. 이 규칙에 따라 나연도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눴다. 사실 그녀에게 남아 있던 자원은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기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위안을 느꼈다.
그녀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마치 서로를 보호하는 가족처럼 느껴졌다. 나연은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녀에게 남긴 유언은 단 하나였다.
“절대 믿지 마라.”
나연은 그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그녀가 알고 있던 세상의 법칙과는 너무 달랐다.
숨겨진 이면
그러나 나연은 곧 공동체의 이상한 점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M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M의 말은 무조건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고, 그의 말에 반하는 의견은 쉽게 제기되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 M이 주도하는 기도나 명상 시간에 참여했다. 나연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모습에 점차 경계심이 들었다. 마치 M이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낯선 충성심
어느 날, 나연은 공동체의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문득 말끝을 흐리는 걸 눈치챘다. 그 사람은 M에 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 입을 닫았다. 나연은 그의 눈빛에서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M의 존재가 이 공동체에서 사람들의 삶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힌 듯했다.
“왜 M에 대해 말을 멈춘 거야?” 나연이 물었다.
그는 잠시 나연을 쳐다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M을 신뢰해. 그를 의심하는 것은 이 공동체를 부정하는 거야.”
그가 곧 말을 돌리며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연은 M의 진짜 의도가 무엇일지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완벽하게 들리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M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곧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뜻일까?
의심의 시작
그날 밤, 나연은 이 공동체에서 이상한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M은 마치 모두가 그의 말에 따를 것을 확신하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존재가 절대적이라는 듯이 굴고 있었다.
나연은 혼자 창가에 서서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진짜로 이게 나를 위한 삶일까? 아니면 모두가 눈을 감고 있는 걸까?”
그녀의 의문은 그저 질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M의 진짜 의도를 파헤치려는 결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