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점점 고요해졌지만, 붉은 빛의 잔재는 여전히 약한 맥박처럼 미세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남은 세계의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떨렸다. 나연은 그 빛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건 정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희망일까? 아니면 더 큰 재앙의 씨앗일까?’
주현이 나연 옆에서 낮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연, 우리가 이걸 보호한다고 해도… 진짜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너무 거대해.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몰라.”
“우리가 감당해야 해.” 나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싸워왔어. 선택권을 잃지 않으려고, 자유를 지키려고. 여기서 물러선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선택이 무의미해져.”
주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우리가 선택한 거지. 아무리 어려워도, 이걸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해.”
붉은 빛의 나머지 잔재는 작지만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에너지가 아니었다. 나연은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남긴 흔적과 기억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고통, 희망, 두려움, 그리고 사랑이 이 작은 빛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M은 떠났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연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렸다.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은 네 몫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일종의 도전처럼 들렸다.
광장의 주변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는 붉은 빛의 나무가 무너지고, 광장이 고요해진 것을 보며 조심스럽게 걸어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지만, 그 안에는 희미한 희망도 엿보였다.
한 노인이 나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제… 우리가 안전한 건가요?”
나연은 그의 질문에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만들 수 있다면, 더 나아질 거예요.”
그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가능하겠죠.”
그의 말은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주는 듯했다. 그들은 점점 더 광장으로 모여들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랜 단절과 고립 끝에, 그들은 이제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주현은 그 장면을 보며 나연에게 말했다. “나연, 봐.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있어. 우리가 해낸 거야.”
나연은 주현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들며 서로를 도왔고, 쓰러진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붉은 빛의 잔재가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끝까지 싸운 이유가 여기 있네.” 나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선택권을 지키려고 싸웠고, 이제 그 선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해.”
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린 뭘 해야 할까? 이 잔재를 그냥 두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없애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해야 할 건 이걸 지키는 거야.” 나연은 단호히 말했다. “이 잔재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증거야. 이걸 통해 우리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해.”
사람들은 붉은 빛의 잔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나연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함께 해야 해요.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협력해야만 이 세계를 다시 세울 수 있어요.”
한 젊은 여성이 손을 들고 물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세상이 됐잖아요.”
“맞아요.” 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실패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바로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이 빛이에요. 이건 우리 모두가 남긴 흔적이자, 우리가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에요.”
붉은 빛의 잔재는 사람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위협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상징처럼 보였다. 나연은 그 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우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거야.” 나연은 스스로에게 말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