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과 주현은 나무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광장을 걸어 나왔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주위의 풍경은 적막 속에서 점점 더 쓸쓸해 보였다. 나무의 가지와 뿌리는 빛을 잃어가며 가루처럼 흩어졌고, 그 자리에는 황폐한 땅만이 남았다. 나연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바라보며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이제 정말 끝난 거야?” 주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나연 옆을 따르며 광장의 잔해를 둘러보고 있었다.
“모르겠어.” 나연은 짧게 대답했다. “우리가 이걸 멈추긴 했지만, 그게 진짜 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주현은 무너진 구조물의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남아 있는 건 뭐야? 저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나연은 주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나무의 잔해 중 일부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불씨처럼 미약하게 맥박을 내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에서 M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낮아진 톤이었다. “네가 모든 것을 끝냈다고 믿고 싶겠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연은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끝났어, M. 너의 계획도, 네가 만들려던 세상도.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나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M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믿나? 네가 나무를 멈추고, 이 세계의 중심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는 여전히 이 세상이 남긴 잔재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잔재라니?” 주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남아 있는 붉은 빛.” M은 나무의 잔해를 가리켰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 세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나연은 그가 가리키는 잔재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그것이 단순히 기계의 잔해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붉은 빛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은 무언가 깊은 슬픔과 분노였다.
“이건 사람들의 기억이야.” 그녀는 속삭이며 손을 떼었다.
“그렇다.” M이 대답했다. “저 잔재 안에는 이 세상을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기억과 의식이 남아 있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할지는 이제 네 선택이다.”
“선택이라니.” 나연은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그동안 해왔던 선택이라는 말은 결국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핑계였잖아. 이번에도 다를 게 없을 거야.”
“아니.” M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네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이제 이 세계의 운명은 너의 손에 달려 있다.”
나연은 잔재를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M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 붉은 빛을 남긴다면, 그것은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없애는 것은 이 세상이 남긴 마지막 흔적을 지우는 일이기도 했다.
“나연…” 주현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이걸 놔두면, 또다시 위험이 생길 수도 있어.”
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이걸 없애는 것도 정답이 아닐지도 몰라. 이건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야. 우리가 그걸 지워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싸워온 거지?”
“그럼 네가 선택할 방법은 뭐야?” 주현이 물었다.
나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이걸 보호해야 해. 이것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리고 이걸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해. 사람들의 기억과 자유를 지키면서.”
M은 그녀의 결정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 선택이군. 하지만 네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지켜보겠다.”
“우린 너 같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통제를 허용하지 않을 거야.” 나연은 단호히 말했다. “너의 시대는 끝났어, M.”
M은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내 시대가 끝났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 세계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네 공로일 것이다.”
그는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점점 더 희미해졌고, 마침내 붉은 빛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연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지만, 이제 그녀 앞에 놓인 새로운 싸움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주현이 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 이걸로 끝난 거 맞지?”
“아니.” 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우리가 이 세계를 다시 만들어야 해.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주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그걸 함께 하자.”
나연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