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나연과 주현이 광장에 도착했을 때, 붉은 빛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무 같은 구조물이 땅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금빛과 은빛이 섞인 빛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지와 뿌리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생명체 같았다.
나연은 멍하니 그 빛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뇌리에는 의문과 두려움이 뒤엉켰다. 그녀가 싸워온 모든 것이 지금 눈앞에서 이 형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주현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저건 우리가 멈춰야 했던 그 시스템이 맞아? 아니, 이런 게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거야?”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M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김없이 차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광장 중앙의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네가 만든 세계다, 나연.”
나연은 몸을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네가 설치한 기계를 멈춘 게 이런 결과를 낳았단 말이야? 거짓말하지 마.”
M은 고개를 저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네가 내 시스템을 멈췄을 때, 이 세상에 있던 모든 데이터와 기억이 하나로 응축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저 빛의 나무로 재구성된 것이다. 네가 한 선택이 그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셈이지.”
“변화? 네가 말하는 변화가 이런 끔찍한 모습이었어? 저건 통제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일 뿐이잖아!” 나연은 소리쳤다.
M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나무를 가리켰다. “저것은 감옥이 아니다. 저것은 인류가 남긴 모든 기억과 의식을 모아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게 만든 것이다. 이 나무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나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그토록 멈추고자 했던 그의 계획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나무를 바라보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 순간, 나무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기계의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거라고?” 그녀는 기계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속삭였다.
M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만질 수 있는 것은 그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저 안에는 이 세상을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들어 있다. 그들의 희망, 두려움, 그리고 고통이 모두 이 나무 안에 있다.”
주현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건 결국…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들어간 거야?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그래.” M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기억은 더 이상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집합체가 되어, 인류의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나연은 M의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다. 그녀는 그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뭔가 진실함이 엿보였다. 그것은 자신만의 이상에 심취한 자의 태도였다.
“너는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저건 구원이 아니라 파괴야.” 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게 만들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네가 말하는 이상적인 세상으로 강제로 몰아넣는 것뿐이잖아.”
“자유?” M은 웃으며 말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했나? 전쟁, 기아, 그리고 이 황폐한 세상을 만들었지. 나는 그 자유를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더 이상 고통을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럼 왜 네가 선택해야 하지? 왜 네가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해?” 나연은 소리쳤다.
M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내가 제안한 것이다. 네가 이 나무를 멈추거나, 이대로 두거나, 모든 선택은 네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초래할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연은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뭔가 더 거대한 존재였다. 그 나무의 줄기와 뿌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우리가 이걸 멈추면…” 그녀는 속삭였다. “이 세계는 더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몰라. 하지만 이걸 놔둔다면, 그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게 될 거야.”
주현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이걸 멈출 방법은 있어?”
“있어.” 나연은 결심한 듯 말했다. “우리가 이 나무의 중심부에 도달하면, 이걸 완전히 정지시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어.”
주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함께 갈게. 여기서 물러날 순 없어.”
그들은 나무로 걸어갔다. 나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달콤한 속삭임이 뒤섞인 기묘한 소리였다.
나연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이 나무를 멈추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었다.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없는 세상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의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또 다른 거대한 기계를 발견했다. 그것은 나무와 연결된 심장처럼 보였다. 그것은 맥박처럼 진동하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게 중심이야.” 나연은 속삭이며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M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저걸 멈추려 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끝낼 것이다. 이 나무도, 이 세계도, 너의 선택도.”
나연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기계의 패널을 열었다. 그녀는 회로를 살피며 멈추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