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했고, 그의 눈빛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사람을 압도하거나 위협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설득력 있는 힘이 있었다. 나연은 그의 존재 자체가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가 남기고 간 말들은 짧고 간결했지만, 나연에게는 그것들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다.
“너는 혼자 살아남았지만, 네가 정말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그녀가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연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살아가는 삶이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지금껏 그 믿음만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비수처럼 박혔다.
그날 이후로 나연은 마음이 불편했다.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창고에서 나와 황무지로 나설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번이나 M이 다시 나타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겨우 그가 떠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진짜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마을의 흔적
나연은 평소처럼 자원을 찾으러 폐허가 된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언젠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작은 공동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빈 건물과 부서진 차량들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곳을 몇 번이고 찾았지만, 더 이상 유용한 자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마을 한가운데에 커다란 모닥불 자국이 있었다. 주변에는 여러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군가, 아니 어쩌면 여럿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M의 무리인가?”
나연은 긴장한 채로 조심스럽게 발자국들을 따라갔다. 발자국은 마을을 벗어나 황무지로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들은 분명 이곳에 있다가 떠난 것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더 살피려다, 발에 걸린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낡은 깡통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새 삶이 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함께하라.”
M의 초대
집으로 돌아온 나연은 그 메시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가 던진 말과 무리가 남긴 흔적, 그리고 그 이상한 메시지는 하나같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들이 뭘 하든 상관없어. 나는 나 혼자서 충분히 잘 살아왔어.”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일이 끝없는 생존의 반복이었다. 그녀는 물과 음식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누군가의 공격을 두려워하며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 삶이 정말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누군가가 다시 창고 문을 두드렸다.
“또야…”
나연은 재빨리 칼을 쥐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M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며칠 전과 똑같은 침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여기 온 거야?” 나연은 칼을 겨누며 물었다.
“널 데리러 왔다.”
“미쳤군.” 나연은 단호히 대답했다. “난 혼자서 충분히 잘 살고 있어.”
M은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너는 이미 혼자가 아닌 삶을 갈망하고 있다.”
그 말에 나연은 화가 치밀었다.
“갈망? 난 혼자인 게 편해. 너희들처럼 이상한 집단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고.”
M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말했다.
“편하다고 해서 그게 올바른 선택인 건 아니야. 네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내 문제지.”
“아니, 그건 네가 믿는 세상이 잘못된 문제야.”
그는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낡은 지도로 보였다. 나연은 거부하려 했지만, 그는 강제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네 삶을 바꿔주겠다고 약속은 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이대로 혼자서 끝까지 살 수 있을지 생각해봐. 우리는 함께 더 나아질 수 있어.”
그가 떠나고 나서도, 나연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그가 준 지도가 들려 있었다.
혼란 속의 선택
지도는 황무지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그녀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이었다. 나연은 마음이 복잡했다. M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혼자 살아가는 삶을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그의 말처럼 함께하는 삶을 찾아 나서야 할지.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혼자 사는 삶이 편안함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그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
다음 날 아침, 나연은 지도를 손에 들고 황무지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고, 마음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생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