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은 붉은 빛을 내뿜는 거대한 기계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규칙적인 박동을 내며 방 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기계의 표면에는 빛나는 회로들이 얽혀 있었고, 그 중심에서 붉은 빛이 맥박처럼 터져 나왔다. 그녀는 거대한 심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문제의 근원인 거겠지.” 나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현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걸 정말로 멈출 수 있는 거야? 아니, 우리가 멈추려고 하면 이걸 작동시킨 M이 가만히 두겠어?”
M은 주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연과 주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저걸 멈추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내가 막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하지만 내가 저항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지 않았나, 나연?”
나연은 그의 말을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그의 목소리는 뱀처럼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M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손을 뻗어 기계를 가리켰다.
“이 기계는 단순히 붉은 빛을 내뿜는 장치가 아니다.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건 단지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핵심이다.”
나연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노려보았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네가 하는 말은 늘 그렇게 포장되어 있지. 사람들을 구원한다면서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선택의 기회를 없애는 거잖아.”
M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유? 네가 말하는 자유가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 너희는 선택을 가졌지만, 그 선택은 전쟁과 파괴, 죽음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이 기계는 너희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럴 리 없어.” 나연은 그의 말을 단호히 부정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기계로 다가갔다. “난 네가 이걸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확신해, 네 계획은 인류를 위한 게 아니야. 이건 그저 네가 만든 감옥이야.”
기계의 앞에 선 나연은 손을 뻗어 그것을 멈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기계는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단순히 전원을 끄는 방식으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계의 외부 패널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이 안에 무슨 장치가…” 그녀는 중얼거리며 기계의 중심부를 탐색했다.
그 순간, M의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들렸다. “조심해라, 나연. 그 기계를 멈추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네가 그것을 잘못 다룬다면, 이 붉은 빛은 단순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나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기계 내부를 살폈다. 그녀는 내부에서 회로가 연결된 중심부를 발견했다. 그것은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출발점처럼 보였다.
“여기야.” 그녀는 속삭이며 그곳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가 회로에 손을 대려는 순간, 주현이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나연, 잠깐만! 그거 건드려도 되는 거야? 네가 확신할 수 있어?”
나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도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현에게 말했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더 나빠질 거야. 지금 이걸 막아야 해.”
그녀는 다시 손을 뻗어 회로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기계에서 갑작스럽게 강렬한 붉은 빛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왔다. 나연은 눈을 감으며 뒤로 물러섰고, 주현도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 안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M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널 막지 않았다. 하지만 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싶어졌군.”
붉은 빛은 기계에서 방출되며 방 안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응집체처럼 느껴졌다. 나연은 그 빛 속에서 자신이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기계에 손을 뻗어 내부의 회로를 강제로 끊으려 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고,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 피부가 따끔거렸다.
“끝낼 거야…” 그녀는 속삭이며 회로를 끊었다.
기계는 갑작스럽게 진동을 멈췄다. 붉은 빛도 멈췄고, 방 안은 다시 한 번 고요에 잠겼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기계가 멈춘 자리에서 새로운 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붉은 빛과는 달리 차갑고 하얀 빛이었다. 그 빛은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M은 그 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결국 네가 이걸 선택했군. 흥미로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나연은 그의 말을 듣고 등을 돌렸다. 그녀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그녀가 원했던 결과인지 알기 위해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