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은 장치를 손에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심장을 쥔 것처럼, 단순히 기계적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무언가 같았다. 그녀는 이 작은 물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이걸 부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뒤에서 주현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연, 시간 없어. 빨리 해야 해! 이걸 멈추지 않으면 우리 모두 끝난다고!”
그러나 나연은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M이 서 있었다. 그는 전혀 저항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를 막아선 체념한 듯 보이긴커녕 오히려 여유롭고 침착했다.
“결국 네 손에 달렸군.” M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울림은 방 안을 꽉 채웠다. “내가 늘 말했지.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네가 이 장치를 파괴한다면, 그 대가가 무엇인지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나?”
나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조종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그의 표정 하나하나가 그녀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그녀를 화나게 했다.
“네가 원하는 결과는 없을 거야.” 그녀는 낮게 속삭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장치를 바닥에 내리쳤다.
장치가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 동시에 방 안에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마치 살아 있는 불꽃처럼 뻗어나갔고, 서버실 전체를 감쌌다. 장치에서 나온 빛은 서버로 흘러들어가 마치 회로를 따라 퍼지는 피처럼 방 안을 뒤덮었다.
곧이어 서버에서 울리던 기계음이 멈추고, 벽면의 스크린들이 하나씩 꺼졌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정적 속에서 나연은 잠시 숨을 멈췄다.
그러나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천장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방 안에 설치된 기계들이 떨리고, 전선들이 마구 출렁거렸다.
“이게 뭐야?” 나연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외쳤다.
M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끝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네가 한 건 단순히 시스템을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균형 자체를 무너뜨렸다.”
“거짓말이야.” 나연은 그의 말을 부정하며 소리쳤다. “네가 이 모든 걸 조작한 거겠지!”
M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서버실의 중심을 가리켰다.
“이 서버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세계의 마지막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네가 장치를 파괴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연은 그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네가 그걸 왜 멈추지 않았겠어? 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건 모두 네가 만든 계획일 뿐이야!”
“계획이라…” M은 조용히 웃었다.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렇게 믿어라. 하지만 네가 방금 한 행동이 너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는 네가 직접 보게 될 것이다.”
서버실 바깥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벽이 진동하며 먼지가 떨어졌고, 스크린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잔상이 흔들렸다. 나연은 소리를 향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주현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연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버실 밖으로 나갔을 때, 그들은 광장에서 이미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다. 그들 모두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붉은 빛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화염처럼 보였다. 나연은 그 빛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내가 만든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녀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장치를 파괴한 순간, 그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다.
M이 천천히 광장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선택의 대가를 보고 있다.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연. 그 자유가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는지 보아라.”
“아니야…” 나연은 속삭였다. “그건 네가 말한 구원이 잘못됐기 때문이야. 네가 선택을 강요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M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인간이 본능적으로 하는 실수를 막으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네가 그것을 거부했다. 이제 모든 것은 너희의 몫이다.”
광장은 점점 더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도망치며 비명을 질렀고, 건물들이 진동과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주현은 나연을 붙잡고 말했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걸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이잖아!”
나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있어. 우리가 이걸 바로잡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네가 장치를 부쉈잖아. M이 말한 대로라면, 그게 균형을 유지하던 마지막 조각이었는데!”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나연은 결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모든 걸 조작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뭘 해야 할지 그가 결정하도록 둘 수는 없어.”
나연은 다시 한 번 M을 마주보았다.
“이 모든 것을 끝낼 방법은 하나야. 네가 가진 남은 계획의 중심을 찾아 그것까지 파괴하는 것.”
M은 조용히 웃었다.
“과연 네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나연? 네가 이 세계를 망가뜨리고 나서도 말이다.”
그는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내가 틀렸는지, 네가 틀렸는지… 결과는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