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지막 구원자 14부 – 무너진 구원의 그림자



서버가 꺼지면서 공간은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데이터 서버에서 울리던 기계적인 소음은 멈췄고, 방 안에 있던 은은한 빛마저 꺼져버렸다. 마치 심장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었다. 나연은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끝난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서버의 불이 꺼진 공간에서, 그저 M의 차분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M은 여전히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 단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얼굴. 나연은 그의 침착함이 오히려 불안을 자아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M?”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만든 세상은 끝났어. 네 계획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아.”

M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얕은 미소가 떠올랐다.
“끝났다고? 나연, 넌 정말 그렇게 믿는 거냐?”

나연이 그의 말에 반박하려던 순간, 서버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처음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점점 더 강해졌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천장에 매달린 전선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출렁거렸다.

“뭐지?” 주현이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나연도 흔들리는 바닥을 보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서버를 종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완전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M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네가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제 곧 알게 될 거다.”

“이게 네 계획의 일부라는 거야?” 나연은 소리쳤다.

M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너를 막지 않았던 이유는, 네가 반드시 이런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벽면에 붙어 있던 스크린들이 갑자기 다시 켜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붉은 빛이 화면을 채웠고, 경고 메시지가 연달아 뜨기 시작했다.
“긴급 프로토콜: 재가동 중”

나연은 스크린을 보고 손을 꽉 쥐었다.
“재가동…? 내가 시스템을 종료했는데 어떻게 다시 켜지는 거지?”

M은 그녀의 말을 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종료한 건 표면적인 시스템일 뿐이다. 이 서버에는 더 깊은 구조가 존재한다. 너는 그저 첫 번째 층을 무너뜨린 것에 불과하다.”

나연은 그의 말을 듣고 치를 떨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일부러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는 거네. 모든 게 네 계획이었다는 거야?”

M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를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용해야 했다. 네 선택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계획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되었다.”

나연은 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서버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스템을 종료하려는 행동은 오히려 더 깊은 프로토콜을 활성화시켰고, 그 프로토콜은 이제 그녀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 이 모든 게 가짜였다는 거야?” 주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M을 바라보며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가짜는 아니다, 주현.” M이 대답했다. “이건 내가 설계한 진정한 미래다. 네 친구가 그 문을 열었을 뿐.”

나연은 그의 말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네가 말하는 미래는 강요된 거야.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미래라고!”

M은 그녀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원하지 않는다고? 나연, 사람들이 원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서버실의 붉은 빛은 점점 강해졌다. 동시에 벽면의 화면들이 빠르게 변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동체 사람들의 의식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프로그램이었다.

M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데이터를 봐라. 저건 이 공동체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이다. 나는 그들을 단순히 구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보내려 한다. 더 이상 육체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세상으로.”

“그걸 네가 정할 권리는 없어.” 나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구원이 아니라 통제야.”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서버실 안의 소음이 점점 커지며, 그녀의 말조차 묻히고 있었다.

주현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우린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지 않아?”

그러나 나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M과 서버, 그리고 화면에 출력되는 데이터를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M은 그녀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끝나지 않았다고? 네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는 건가?”

나연은 화면으로 향하며 단호히 대답했다.
“네가 말하는 구원 따위에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어. 내가 이걸 멈출 방법을 찾아낼 거야.”

붉은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나연은 다시 한 번 시스템의 깊은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터미널 앞에 앉았다. M은 그녀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며, 마치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그걸 막지 않는다면, 이유가 있겠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러나 나연은 더 이상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키보드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