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지막 구원자 1부 – 폐허 속의 고독



지구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나친 탐욕과 끝없는 전쟁, 그리고 누구도 멈추려 하지 않았던 폭주는 결국 지구를 거대한 화산재와 메마른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기후는 미쳐버렸고, 땅은 더 이상 사람을 품지 않았다. 강물은 썩어버렸고, 하늘은 더 이상 푸르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원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아마 믿는다는 개념조차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단 한 가지를 믿었다. 혼자가 안전하다는 것을.

나연은 그런 세상에서 완벽히 적응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집은 잿빛 언덕 너머 외딴 창고였다. 작은 창고라고 부르기엔 낡은 철문과 구멍 난 벽들이 너무 초라했지만, 나연은 이곳에서 안전을 느꼈다. 적어도 누군가와 마주칠 걱정은 없으니까. 누군가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삶보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게 나연에게는 훨씬 평화로웠다.

그녀는 매일 아침이면 텅 빈 들판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낡은 깡통에 물을 끓이고, 간신히 모은 허술한 식량으로 끼니를 때웠다. 오늘은 통조림 하나를 꺼내 들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통조림 상자를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 나가야겠네…”

나연은 작은 가방에 칼과 물병을 챙겼다. 그녀는 언제나 주의 깊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애쓰며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는 것은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서 타인을 믿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그날도 언제나처럼 조용히 움직이던 나연은 한참을 걷다가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

나연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낡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동안 아무도 없는 폐허 속에서 살아왔던 그녀에게 이런 소리는 생소하면서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누구지?”
낡은 무전기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목소리는 더 뚜렷해졌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 생존의 길은 단 하나, 연대다…”

나연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전기를 손에 들고 말없이 들여다봤다. 그런데도 이상한 점은, 무전기가 어떤 신호를 잡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흐릿하게 사라지자, 나연은 무전기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이런 소리 들으면서 시간 낭비할 여유는 없지.”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무전기의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함께하자고 말하다니. 이런 세상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며칠 뒤, 나연은 창고 근처에서 낯선 무리를 목격했다.

그들은 먼지에 휩싸인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긴장한 채로 작은 창문 너머로 그들을 살폈다. 세 명, 아니 네 명…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그들은 무기가 아니라 작은 짐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구를 가졌으며,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태양 아래서 은빛으로 빛났고,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군대의 지휘관처럼 단호하면서도 여유로웠다.

나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상하게도 그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타인의 불신을 뚫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 존재 같았다.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
그가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나연의 귀에 다시 꽂혔다. 무전기에서 들었던 그 말과 똑같았다.

밤이 되자, 나연은 창고 문을 굳게 닫고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 남자, 그리고 그의 무리는 뭔가 이상했다. 누가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을 모은단 말인가? 무리 속에서 누군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잠시, 나연은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며칠 뒤, 나연은 창고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 남자였다. 긴 코트를 입고, 침착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나연.”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연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구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낸 거지?”

그 남자는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너를 도우러 왔다. 그리고 네가 필요하다.”

나연은 칼을 손에 쥐었다. 그가 웃었다. 그의 미소는 기괴할 정도로 평온했지만, 뭔가 차갑고 계산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 이름은 M이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게 도와줄 수 있어.”

그 말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내가 너를 믿어야 하지?”
그녀의 말에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믿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결국 믿게 될 거야.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남고 싶어 하니까.”

그날 밤, 나연은 M의 말을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